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 왕국/가문 (문단 편집) ==== [[앙주 가문|앙주]] Anjou ==== 앙주의 백작이던 풀크 5세는 1129년 예루살렘 왕국의 왕위 계승자 멜리장드와 결혼해 영지를 큰아들 조프루아 당주에게 맡기고[* 조프루아는 잉글랜드 왕국의 공주 [[마틸다(잉글랜드)|마틸다]]와 결혼했고, 둘의 아들인 [[헨리 2세]]가 [[플랜태저넷 왕조]]를 연다.] 예루살렘으로 건너가 1131년 공동 왕이 되었으나 유럽에서 온 심복들을 정치에 참여시키며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려 했으며, 아내 멜리장드와 십자군 지휘관들의 후예인 영주 파벌과 대립했다. 둘 사이에서 보두앵과 아모리 두 아들이 태어났다. 풀크는 1143년 사냥 도중에 낙마해서 중태에 빠지고 곧 사망한다. 왕위 계승 당시 13세였던 보두앵이 [[보두앵 3세]]로 즉위한다. 나이 때문에 어머니 멜리장드가 섭정을 맡았으나 성년이 됐는데도 온전히 권력을 내어주지 않자 왕국을 남북으로 분할시키고 내전을 벌여 어머니를 은퇴시키기에 이른다. 이후 아스칼론을 점령해 이집트로의 교두보를 얻고 동로마 제국 [[마누일 1세]]의 조카 테오도라와 결혼해 동맹을 꾀하는 등 분전했으나 성과를 내기 전에 자식 없이 병사하며 동생 [[아모리 1세]]가 왕위를 물려받는다. 아모리는 쿠르트네의 아녜스와 결혼해 시빌라와 보두앵, 알릭스(유년기에 사망)을 자녀로 두었는데 예루살렘의 귀족들과 성직자는 아녜스에게 적대적이었고 아모리가 아녜스와의 결혼을 무효로 하지 않는다면 왕위에 오르는걸 반대했다. 아모리는 아녜스와 이혼하는 대신 시빌라와 보두앵은 적자로 인정받게 했고, 고조부가 같다는 명목으로 아녜스와 헤어졌다. 그 후 아모리는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 공략을 시도하면서 동로마와 황족인 마리아 콤니니와 결혼해 동맹을 강화하며 형처럼 세력 확장을 시도했지만 역시 이집트를 노리던 [[장기 왕조]]에서 파견한 [[시르쿠]]와 그 조카 [[살라흐 앗 딘]]에 의해 무위로 돌아갔으며, 1174년 이질로 사망한다. 장남 보두앵이 [[보두앵 4세]]로 즉위했으나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던 나병 환자였기 때문에 오래 살지도, 혼인을 해 후계자를 가질 가망도 없는 몸이었다. 때문에 누나 시빌라를 유력 귀족과 결혼시켜 왕국을 안정화시키려 했는데 첫 결혼 상대는 몬페라토 후작의 장남인 알레라미치 가문의 굴리엘모였으나 그가 유복자 보두앵만 남기고 말라리아로 사망하자, [[기 드 뤼지냥]]과 다시 결혼시켜 섭정으로 삼았다. 병마에 고통받으면서 이집트의 지배자가 된 살라딘과의 전투와 휴전을 반복하던 보두앵 4세는 시빌라와 굴리엘모의 유복자인 외조카 [[보두앵 5세|보두앵]]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24세로 요절한다. 보두앵 사후 친누나 [[시빌라(예루살렘 왕국)|시빌라]]와 아모리와 마리아 콤니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복여동생 [[이사벨 1세(예루살렘 왕국)|이사벨]]이 여왕이 될 때도 있었으나 통치는 부군들이 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